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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문답자에 대한 답변 (계속됨)

 
 


1월 21일

성경문답자는 “역사적인 기독교로 되돌아가자”고 말했습니다.

기사1

성경 대 전통

최근에 성경문답자는 “역사적인 기독교”가 모든 그리스도인의 진리를 판단해야 할 기준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라디오 방송에서 윗트니스 리와 지방교회를 언급하며 “그들은 역사적인 기독교를 곡해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멜로디랜드에서 한 강연에서 그는 지방교회들에게 “역사적인 기독교로 되돌아가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결코 성경으로 돌아가란 말은 하지 않았는데 사실상 성경은 그에게 곤란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이사야서 9장 6절과 요한복음 14장과 로마서 8장 9-10절과 고린도전서 15장 45절 하반절과 고린도후서 3장 17절과 고린도후서 13장 5절을 해석했을 때 그는 결코 이러한 구절에 따라 우리에게 답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우리의 관점이 이단적이라거나 우리의 가르침은 어떠한 공회에 의해 정죄되었고 우리는 “역사적인 기독교”로 돌아가야 된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한 위치를 취함으로 그가 고대의 바리새인들을 계승하고 있다는 것을 성경문답자는 깨닫고 있습니까? 그들은 주님께,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마15:2) 라고 말했던 자들입니다. 그들은 주님께 “당신과 당신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든 지키지 않든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장로들의 유전을 어기는지 아닌지를 관심 했습니다. 성경문답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에 조금이라도 주의를 기울인다면 우리가 관심 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히 그에게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가 우리를 정죄하는 것은 우리가 역사적인 기독교의 유전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위치를 취함으로 성경문답자는 모든 로마 카톨릭 공회 중에서 가장 권위 있는 트렌트 공회의 노선에 서 있습니다. 1546년에 이 공회는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과 전통 둘 다에 포함되어 있고 둘은 동동한 권위라고 선포했습니다. 공회는 더 나아가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 둘을 동등하게 존중하는 것이 의무라고 말했습니다. 비록 성경문답자가 성경과 전통을 똑같이 존중하는 것을 확실히 부인하겠지만 그의 행동은 그런 말보다 더 확실합니다. 실제로 그는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의 입장에서 우리와 만나는 것을 피하고 지방 교회들은 역사적 기독교 유전 안에 있지 않다고 계속해서 비난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문답자의 신-카톨릭주의(neo-Catholicism)입니다.

역사적인 기독교 무엇인가?

우리는 반드시 우리 자신에게 이 질문을 해야 합니다: 무엇이 역사적 기독교입니까? 성경문답자가 계속해서 지방 교회들 안에 있는 우리에게 역사적인 기독교로 돌아가라고 권면하기에, 그가 우리에게 돌아가라고 권면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 자신들에게 물어보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초대 교부들

우리에게 역사적 기독교로 돌아가라고 하면서, 성경문답자는 니케아신경 이전의 교부의 가르침과 교리로 돌아가라고 우리를 권면하는 것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보다 훨씬 못한 근원에 전념하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필립 쉐프가 이 점을 지적했습니다:

루터는 교회의 순결한 순수의 황금 시대에 대해 몰랐다...모든 사람들의 말, 심지어 최고이며 제일 거룩한 말일지라도 그것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이 최고라는 절대적인 관점을 가졌었고 이는 그를 교부들과 신학교수들을 비평하며 차별하는 판단을 내리게 했다...그는 그들의 글을 성경보다 훨씬 아래 두었고 그 둘을 함께 연구할수록 그 차이로 더욱 인상 받았다. 교부들에 의해 교회를 개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할 수 있다(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Vol. VII, p.534)

쉐프는 또한 교부들에 대한 칼빈의 관점을 지적했습니다:

이 거룩한 사람들은 많은 것들에 대해 무지했었고, 종종 상호간에 모순되었고, 가끔은 그들 자신과도 일치하지 않았다(쉐프, Vol. VIII, p.530)

지난 세기의 뛰어난 신학자가 초대 교부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속죄와 함께 한 성육신을 믿는다. 그리고 부활은 이미 그리스도안 에서 성취되어 기독교의 위대한 기초와 특색 있는 진리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처음 4세기의 교부들 안에는 없어 그들에 관한 증거나 그들 안에 믿음을 찾아야 한다. 확실히 니케아신경 전의 교부들은 주님의 참되고 충만한 신성에 대한 주장에서 실패했다고(의사로서) 판단한다.(J.N. 다비의 전집, Vol. XV, pp.291-292).

우리가 진리를 찾고 있다면 우리는 확실히 교부들에게 의지할 수 없습니다. 그들을 잘 모르는 사람도 그들이 심각하게 의견이 달랐고, 삼위일체와 같이 중요한 교리도 공개적으로 의견이 달랐고, 서로서로 모순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삼위일체의 교리에 관한 오리겐(Origen)의 신학을 보십시오. 그는 가장 형편 없는 언어로 그의 관점을 표현했습니다. 저는 그의 마음과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는 아들이 전적으로 아버지보다 열등했고, 아버지는 아들과 그 영이 서로서로에게 뛰어난 것만큼 아들과 그 영에 대해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뜻밖의 상상력이 있어 영혼의 선재의 교리를 가르치는데 이생의 신분은 전생에서 어떻게 살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그의 신학은 보편구제설(universalism)과 혼합된 몰몬주의에 가깝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교부”라 불립니다.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시릴(Cyril)와 알렉산더(Alexander)는 둘다 유명한 교부입니다. 알렉산더는 성육신에 문제에 대한 교부들의 인도자였습니다. 그는 그의 반대자 안디옥의 요한(John of Antioch)이 에베소 공회에 도착하기 전에 비난받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요한은 동방 교주들의 공회를 소집하여 시릴을 비난했습니다. 시릴은 12개의 이단 반박문을 제출했고 그것들은 에베소 공회에서 교회의 믿음으로 채택되었습니다. 비난에 직면하여 시릴은 그의 12개의 이단 반박문을 내려놓고 요한이 제안한 신경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전부가 아닙니다. 터틀리안(Tertullian)은 죽음 안에서 그리스도가 부패를 경험했다고 가르칩니다. 시릴이 말하길 이것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는 그리스도의 몸을 보존하기 위해 일반적인 유지가 필요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그의 몸을 위하여 먹지도 않았다고 하고 클레멘트는 그분의 몸이 초자연적인 힘에 의하여 지탱되었다고 말합니다. 시릴에 따르면 우리의 주님은 오직 그분과 함께 있었던 동반자들을 위하여서만 먹었다고 합니다.

처음 4세기의 교부들이 사도들의 때와 가깝기 때문에 아마 누군가는 신약의 진리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우리는 초대의 교부들이 가장 모호하고 느슨하고 불확실하고 게다가 꼭 말해야 한다면 이단적이라는 것을 보게됩니다.” 다비에 따르면, 이레니우스가 연약하고 “어떤 미신”을 갖고 있지만 다른 교부들과 비교해 볼 때 읽기가 상쾌하다고 했습니다. 다비는 계속해서 교부들과 하나님의 말씀을 비교했습니다:

추론적인...오리겐(Origen)의 전혀 뜻밖의 상상력과 얼마나 차이가 납니까; 저스틴 마터(Justin Martyr)의 느슨하게 표현된 교리; 혹은 야망 있는 시릴의 교란된 정통과 확실치 않은 기독교! 성경에 의한 그리스도에 대한 개인적인 지식에서 나오는 이 모든 신앙심과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말씀을 존중하는 것이 얼마나 다른가!(ibid., p.294)

신 조 들

아마도 성경문답자가 우리에게 역사적인 기독교로 돌아가라고 했을 때 그는 단지 교부들에게로만 돌아가라는 것이 아니라 처음 몇 세기들의 신경들로도 돌아가라고도 말한 것입니다. “역사적인 기독교, 역사적인 기독교”라고 외치는 분들은 우리에게 신조 안에도 교회의 믿음이 있다고 말합니다.

사 도 신 경

우주적으로 온 세기에 걸쳐 추천하는 신조 중 하나는 사도신경입니다. 바로 그 제목도 속임입니다. 이 신경과 관련된 우화는 각 사도가 함께 모여 한 조항씩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사도신경은 니케아신경처럼 오래 되지도 않았습니다. 구원에 필요한 그리스도인 믿음들의 모든 기초적인 항목들을 포함하여 이제까지 만들어진 그리스도인 믿음의 가장 유명한 요약이 되어 고대의 향기가 있고, 우주적인 일치의 측량할 수 없는 무게를 지녀 기독교계의 모든 세대와 부분들 간에 연합하는 끈이 되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은 또한 사도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4세기나 5세기경에 처음 나왔습니다. 그때에는 “지옥으로 내려간다”거나,(역: 한글 사도신경에는 이 부분이 빠져있음) 성령의 아들로부터의 발출(procession)도 없었습니다. 에베소 공회가 금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두 조항들은 나중에 더해졌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오늘날에도 그리스 교회는 이 마지막 조항을 반대하고 있으며 이것이 그리스 교회와 로마 교회의 분열의 공공연한 이유입니다. 제가 공공연한 이유라고 하는 것은 역사가 공평하고 분명하게 참 이유가 야망과 경쟁이라고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믿음을 대표하도록 된 이 신경은 사실상 “역사적인 기독교”를 나누었습니다.

사도신경이 분열의 원인이 되었을 뿐 아니라 거기엔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는 기록도 없습니다. 삼일 하나님의 근본적인 진리를 갖고 있는 사람뿐 아니라 아리우스파 사람이나 유니태리언파의 사람도 동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표준을 대표해야 하는 신경으로서 심각하게 생략된 것입니다. 사도신경에서 아버지는 하나님이시고 전능하신 분이시며 아들과 성령은 신성에 관계가 없이 개별적으로 언급되었습니다. 창조는 그리스도이신 말씀과는 아무 관련 없이 아버지에게만 독점적으로 돌려졌습니다. 사실, 이 신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해진 모든 것들은 사람으로서의 그분의 어떠하심에 속한 것입니다.

니케아 신조

하지만 역사적인 그리스도인 교회의 대변자들은 아마도 “우리가 되돌아오라고 하는 것은 니케아 신조입니다”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주후 325년 니케아 공회가 선포한 이 신경에는 그 제작자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분명하게 진술했습니다. 그러나, 비록 그들이 그분이 유일한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란 진리를 제시할지라도 그분이 하나님의 맏아들이라는 것에 대하여는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참으로, 우리에게 신경으로 되돌아가라고 말한 분들이 하나님의 독생자로서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맏아들로서의 그리스도 사이의 차이점을 아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니케아 신경은 우리에게 삼일이신 성경의 유일하신 한 하나님을 제시해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은 우리에게 서로서로 분리된 세 구별된 신성한 위격들을 믿게 합니다:“전능하신 아버지 한 하나님을 믿으며...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성령을 믿는다.” 우리가 성경에서 발견하는 신격의 세 분의 상호침투(interpenetration of the three of the Godhead)는 이 신경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요14:10). 우리 주님의 이러한 말씀 안에서 우리는 그분과 아버지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침투를 봅니다. 하지만 신경 안에는 이러한 것이 없습니다. 사실상, 성경에는 주님이 말씀하실 수 있었듯이 신격의 신성한 세 분의 그러한 상호침투가 있습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요14:9). 아버지와 아들의 이러한 상호침투 때문에 요한은 요한일서 2장 23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제가 묻겠습니다. 그러면 왜 니케아 신조는 우리에게 성경의 하나님을 삼신론 으로서가 아니라 삼일로서 제시하지 않습니까? 니케아 신조가 이 뛰어난 수준의 그리스도인 믿음의 표준이 되어야 하는 “역사적 기독교”로 우리에게 되돌아오라고 하는 사람들은 루터가 우리를 성경 밖의 권위들과 표준에서 우리를 해방시킨 것을 잊은 것 같습니다. 왜 성경문답자는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것을 기록하고 사도들의 글들이 포함된 성경에 호소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하고 첫 사도들이 무엇을 가르쳤는지를 알아보는 가장 최선의 길이 아니겠습니까? 그리스도인 사이에 진리의 문제가 생길 때 왜 성경문답자는 우리에게 성경을 지시해 주지 않습니까? 왜 그는 오히려 이러한 가르침이나 저러한 가르침을 항상 역사적인 기독교가 가르쳐 왔다고 말하기를 더 좋아합니까?

하지만 저는 여전히 니케아 신경 안에 한 가지 더 부족한 것을 지적하길 원합니다. 이 부족은 성령에 대해 말하는 것과 관련 있습니다. 니케아 신조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와 생명 주시는 분으로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왔고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경배받고 영광받고 선지자들이 말한 성령을 믿는다.

이것이 니케아 신조가 성령에 대해 말하는 모든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에 대하여 우리가 믿어야 할 전부입니까? 니케아 신경을 만든 이들이 생명 주는 분이시고,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왔고,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경배 받고, 영광 받고, 선지자들이 말한 것 외에는 성령에 대하여 더 본 것이 없는 게 분명합니다. 분명히 그들은 계시록 1장 4절과 4장 5절과 5장 6절의 일곱 영에 대해 아무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 구절들에 나타난 “일곱 영들”은 분명히 성령인데, 이는 계시록 1장 4-5절에서 교회들이 불렸을 때 교회들에게 있던 은혜와 평강이 삼일 하나님에게로부터 나왔습니다:“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신경은 그리스도와 그 영의 위치가 이 인사말에서 바뀌어 그 영이 두 번째 위치에 있고 그리스도가 세 번째 위치에 있는 것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이것은 계시록이 말하는 날들은 그 영의 때이고 심지어는 그 영이 일곱 배로 강화되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스도의 영화롭게 되심(요7:38-39)이후에 그 영의 구성이 바뀜과, 주가 그 영이시라는 진리와(고후3:17), 계시록 5장 6절의 어린양의 일곱 눈이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는 진리(그리스도와 그 영의 상호침투를 다시 한번 나타냄)와, 계시록 2장 1, 7절에 따라서 그리스도의 말씀하심은 그 영의 말씀하심과 동일하다는 진리는 이 신조에 없습니다. 지방 교회들 안에서 우리는 그 영이 생명을 주고 사람으로 말씀하신다는 것(이 신조에 언급된 그 영의 유일한 두 속성들)을 믿을 뿐 아니라 요한복음 7장 37-39절에 따라서 그분이 영화롭게된 예수의 영이시고, 고린도후서 3장 17절에 따라서 주는 영이시고, 계시록 1장 4-5절에 따라서 그 영은 칠 배로 강화되셨고, 계시록 2-3장에 따라서 그리스도의 말씀하심은 그 영을 듣는 것이고, 계시록 5장 6절에 따라서 어린양과 그 영은 서로 간에 너무나 친밀하게 동일시되어 그리스도의 눈이 그 영 자신이라고 한 것도 믿습니다. 그러므로, 분별력 있는 독자라면 우리가 왜 “역사적인 기독교”가 아닌 성경 그 자체로 돌아가는 것을 주장했는지 이유를 알 것입니다.

공 회 들

그러면 초기 몇 세기 동안 소위 에큐메니칼 공회(ecumenical councils)라 불리운 것들은 어떻습니까?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과 실행에 관한 문제에 권위적인 지침서가 아닙니까? 공회들의 역사를 볼 때 사도후 시대의 교리적이고 교회에 관한 순수함은 꾸며낸 이야기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니케아 I

니케아 신조를 작성하고 그 중 한 저자가 정통적이라 생각되려면 반드시 믿어야 한다고 말했던 니케아 공회는 사실상 그리스도인의 이유로 모인 모임이 아니었습니다. 콘스탄틴 황제가 정치적인 이유로 소집했던 모임이었습니다. 주후 325년 6월에 니케아에서 소집되었고 교회의 첫 번째 총체적인 공회였습니다. 대략 318명의 주교들과 지위가 더 낮은 수많은 성직자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주교 중의 한 명이 의장이 아니었고 콘스탄틴 황제가 의장이었습니다. 주교들은 국가의 높은 위치의 사람들과 다른 위엄 있는 사람들이 그 곳에 들어올 때 깊이 숙인 침묵 안에서 앉아 있었으며 황제의 나타남을 떨리는 기대로 기다리고 있었다고 역사가들이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었을거라 생각되는 황제는 공개적으로 온 세상 앞에서 교회의 머리로서 그의 지위를 취했습니다. 앤드류 밀러(Andrew Miller)가 그의 교회사 에서 지적했듯이 그가 첫 번째 에큐메니칼(세계 교회주의) 공회의 머리로서 앉은 바로 그 순간 그는 최고 제사장(Pontifex Maximus)-이방의 최고 제사장 자리를 보유했습니다. 그는 이 명칭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교회의 머리와 이방의 최고 제사장으로 죽었습니다. 역사는 또한 같은 해에 그가 니케아 공회를 소집하고, 그의 장자 크리스퍼스(Crispus)를 사형하라고 명했고, 20년간 그의 아내였던 파우스타(Fausta)를 뜨거운 물에 질식시켜 죽이라고 명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피로 더럽혀진 사람이 그리스도인 공회의 의장으로서 앉을 수 있는지의 부적합함보다는 적합함에 대해 독자는 아마도 심사할 것입니다.

니케아 II

교회사의 정평있는 학자인 필립 쉐프(Phillip Schaff)는 “니케아는...일반적으로 인정된 에큐메니칼 공회들의 연속을 열고 닫은 명예를 갖고 있다.”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첫 번째와 마지막의 일반적으로 인정된 에큐메니칼 공회들이 다 니케아에서 열렸고 그 이름으로 불리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니케아 공회는 주후 787년에 이레네 왕후(Empress Irene)하에 열렸습니다. 이 공회의 목적은 성화상 숭배에 대한 문제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약 350명의 교회 고위 성직자들이 모였습니다. 처음 여섯 공회의 결의들을 동의한 후에 그들은 다음 캐논을 통과시키고 성령의 인도 하에 그것들에 따라 행동하였습니다:

그림으로 그려졌거나, 모자이크로 만들어졌거나 또는 다른 적절한 재료로 만들어진 유서 깊고 거룩한 그림들과, 귀중하고 생명을 주는 십자가상은 하나님의 성당과 제기들과 제의, 벽과 화판에, 그리고 집안과 거리에 모셔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나, 순결하신 우리 주 천주 성모의 성화상이나, 거룩한 천사들과 모든 성인들의 성화상도 마찬가지이다. 보이지 않고 무한하신 하나님을 위한 특별한 숭배만 빼고 이러한 형상들을 거룩하게 기념예배하고 입맞춰 다뤄야 한다. 이러한 승인된 교회의 태고적 전통을 어기고 강제로나 술책으로 어떤 형상을 제한다면 이러한 사람들이 성직자라면 자리에서 물러나고 파문 당하며, 만약 수도사나 평신도라면 파문 당할 것이다.(밀러의 교회사, p.294)

이 공회는 단지 소위 말하는 기독교가 성경에 절대적으로 상반되는 실행을 형성하고 진지하게 실행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또한 진지하게 환호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믿고 동의하고 서명했다. 이것은 사도들의 믿음이고 교회의 믿음이고 정통의 믿음이고 온 세상의 믿음이다. 삼위일체를 숭배하는 우리는 형상을 경배한다. 누구든지 그것을 좋아하지 않다면 저주가 있을지어다! 형상을 우상이라 하는 모든 이에게 저주를! 형상을 숭배하지 않는 이들과 연락하는 자들에게 저주를! (ibid., p.295)

황제들에 의해 소집된 공회들

“역사적인 기독교”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되돌아오라고 하는 소위 모든 에큐메니칼 공회들은 이방 황제들에 의해 소집되고 그들의 감독 하에 모였습니다. 제가 이미 지적했듯이 첫 번째 니케아 공회는 이방의 최고의 제사장인 콘스탄틴 황제에 의해 소집되고 통솔되었습니다. 콘스탄티노플 공회는 황제의 도시에서 데오도시오스 대제에 의해 주후 381년에 소집되었습니다. 에베소 공회는(The Council of Ephesus) 주후 431년에 데오도시오스 2세가 서양의 공동 황제인 발렌티니안 3세와 관련하여 알렉산드리아의 야심적이며 난폭한 키릴로스의 방향제시 하에 열렸습니다. 칼케돈 공회는 주후 451년에 마르치아노스 황제에 의해 소집되었습니다.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회는 553년에 교황의 동의 없이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소집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3차 콘스탄티노플 공회는 주후 680년에 콘스탄틴 프로고나투스의 방향제시 하에 소집되었습니다. 이 모든 에큐머니칼 공회들이 모두 국가의 머리에 의해 소집되었음을 지적함으로, 정치적이고 교회에 관한 불순이 없지 않았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에베소 공회와 마리아 경배

제가 반드시 지적해야 하는 것은 소위 에큐메니칼 공회라 불리는 가장 존경받는 공회 중 하나인 에베소 공회가 마리아를 경배하는 것을 온전히 인가했다는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용어가 아다나시우스(Athanasius)와 그레고리 나지안젠(Gregory Nazianzen)에 의해 주저없이 자유롭게 사용되었지만 에베소 공회 때 이 용어는 공식적으로 인가되었습니다. 에베소 공회는 주로 네스토리안주의의 이단을 관심한 것이었습니다. 필립 쉐프는, “네스토리안주의를 타도한 것은 마리아-숭배의 승리와 같은 때였다.”라며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네스토리어스의 반대자들은...하나님의 어머니의 탁월한 영광을 표현할 충분한 속성들을 거의 찾지 못했다. 그녀는 순결의 여왕이고, 하나님의 불멸의 성전이고, 거룩한 삼위일체의 거처이고, 두 번째 아담의 낙원이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르는 다리이고, 성육신의 베틀이고, 정통의 왕권이고, 그녀를 통하여 삼위 일체는 영화롭게 되고 숭배받고, 마귀와 귀신들은 패주 되고, 타락한 피조물들은 하늘로 들림받는다(Vol.3,p.421)

역사적인 기독교의 지지자들은 공회들로 되돌아오라고 부르는데 이 공회들 중 하나는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의 자리에 앉혔습니다. 에베소 공회의 마리아학(Maryology)으로부터 나중에 메리올라트리(Maryolatry)가 발전되었습니다. 오늘날 수백만의 로마 카톨릭들은 마리아가 신격의 권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로마 카톨릭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질문 없이 가장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기도합니다. 수천 명의 로마 카톨릭들은 자발적으로 슬픈 어머니를 위한 9일 간의 기도에도 참여합니다. 프랑스의 로르데스나 포르투갈의 파티마나 멕시코의 과달루페의 성모와 같은 국가적 성당들은 그녀에게 헌납되었고 수백만의 사람들을 매혹합니다. 수천 개의 교회들과 학교들과 병원들과 수도원들이 그녀의 영광을 위해 바쳐졌습니다. 마리아에게 붙여진 몇몇 명칭들은 로마 카톨릭들이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를 스스로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어머니, 사도들의 여왕, 하늘의 여왕, 천사들의 여왕, 천국의 문, 하늘의 문, 우리의 생명, 은혜의 어머니, 긍휼의 어머니. 역사적인 그리스도인 교회의 지지자들은 성경에 상반되어 우상숭배까지 낳는 교리를 전파하는 공회로 되돌아오라 부릅니다.

공회들과 교부들은 결혼을 반대함

디모데 전서 4장 1-3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이러한 말들은 성경문답자가 우리를 되돌아오라고 한 교회 역사의 그 시기를 나타냅니다. 성직자들이 결혼하는 것이 금지되었던 실행은 4세기와 5세기에 발전되어 결정을 이루었습니다.

먼저, 바울이 장로는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고 말한 근거로 성직자들이 한 번 이상 결혼하는 것이 금지되어 두 번째 결혼이 금지되었습니다. 그후 주후 306년 스페인에서 모인 엘비라 공회때 성직자들의 독신주의 실행이 한 단계 더 전진하여 모든 계급의 성직자들의 결혼이 금지되었고 이를 어기면 파문되었습니다. 주후 314년에 모인 알레스 공회는 비슷한 캐논을 통과시켰습니다. 325년에 모인 에큐메니칼 니케아 공회도 세 번째 캐논에서 이 같은 성직자들의 결혼을 금지하는 것을 지지했습니다.

니케아와 니케아이후 시대의 위대한 교사들인 “제롬과 오거스틴과 크리소스톰은 그들의 동정의 우수한 거룩함을 지나치게 찬미하여 이 법률제정에 그들의 권위의 무게를 실었다”(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Vol. II, p.412).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제롬은 앞장서서 “동정이란 도끼로 결혼이란 나무를 잘라냈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한번 교회 역사의 니케아 시대는 교리적인 순수성으로 특징지을 수 없고 차라리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딤전4:1) 쫓는 사람들에 의해 대표되었습니다.

결 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신조들의 신학과 선언들과 “역사적인 기독교”의 공회들로 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오늘날 기독교계에 있는 혼돈상황을 산출하도록 도운 기준으로 돌아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제가 이미 지적했듯이 마리아를 숭배하는 죄스러운 실행은 에큐메니칼 에베소 공회에 의해 인가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사도신경은 그리스도의 신격을 선언하는데 지나치게 불충분하고, 니케아 신경은 성령에 대한 진리를 선언하는데 동일하게 불충분합니다. 소위 말하는 에큐메니칼 공회들 모두는 정치적인 함축이 있고 그 당시 정치적인 권력에 의해 소집되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교부들은 그들 사이에서도 동의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그리스도인 믿음의 가장 기본적인 교리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어거스틴은 공회들이 믿을 수 없고 종종 서로서로 모순되고 제한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1장 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시대 이후 모인 모든 대회나 총회는 대소간의 구별 없이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있고 또 많은 오류를 범하였다. 그러므로 이 회의는 신앙과 본분의 규칙으로 삼기보다 도움으로 사용될 뿐이다.(Schaff, Creeds of Christendom, Vol. III, p.670)

역사는 교회 인도자들과 교회 공회들이 실수를 할 수 있고 실수를 하는데 그것들 중 어떤 것은 심각하다는 것을 모두에게 아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지방 교회들 안에 있는 우리는 성령이 해석한 성경이 그리스도인 진리의 유일한 근원임을 확증합니다. 처음 몇 세기의 역사적인 기독교로 되돌라오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상 오늘날 기독교계의 존재하는 모든 혼돈의 근원 안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되돌아가라고 부르심 받는다면 우리는 성경 자체로 되돌아가자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권위의 두 근원-성경과 교회 전통-이 있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성경문답자가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는 전통의 빛 안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실행 또한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진리를 공허하게 만드는 실행입니다. 사실상 이런 실행은 공회들과 함께 한 교부들과 암흑시대에 소개된 신조들로 천년 정도 지속되었습니다. 암흑시대의 근원은 정확히 공회들과, 신경들과, 그들의 생각으로 성경의 진리를 대치하기 시작한 교부들입니다. 사실은 교부들로부터 발전된 소위 교회라 불리는 것과 공회들과 신경들이 희미해지고 부패되어 16세기의 마르틴 루터를 통한 하나님의 개입으로 교회가 성경으로 되돌아가게 한 것입니다. 거룩한 공회들이 확증하고 교회가 정의한 “정통 믿음”에 대해 질문할 권리가 없다고 루터에게 말했습니다. 여기에 그가 답변합니다:

성경과 분명한 이유에 의해 깨닫게 되기 전에는 나는 교황들과 공회들의 권위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상호간에 모순되고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우리가 반드시 돌아가야 할 곳은 교부들과 공회들과 신조들이 아닙니다. 성경 그 자체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교부들과 공회들과 신조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방 교회들 안에 있는 우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합니다: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빛을 보지 못하고 (사8:20)

이것이 이 시리즈 기사 다섯 개 중 마지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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