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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문답자에 대한 답변 (계속됨)

 
 


1월 21일

성경 문답자는 “역사적인 기독교로 돌아오라”고 말했습니다.

기사 2

최근 연설에서 성경문답자는 지방 교회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역사적인 기독교로 돌아오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주님의 말씀을 따르고 사람들의 의견을 따라서는 안됩니다. 만약 누군가가 성경에 나타난 교회나 역사적인 교회든지 간에 교회에 관하여 분명하다면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신 분이고(마16:18), 교회를 위해 자기 자신을 주사 그분 자신의 피로 사신 분이고(엡5:25, 행20:28),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에게 너무나 빈틈없이 말씀하신 분입니다(계2, 3). 그러므로 이 글에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적인 기독교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마태복음 13장과 계시록 2,3장에 있는 주님의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 우리는 초보적인 방법으로 마태복음 13장, 주님의 초림부터 이 시대 마지막에 주님의 재림까지 기독교계의 발전을 도표로 만든 성경 부분을 논의하겠습니다.

대다수의 그리스도인 교사들은 진짜든 상상이던 간의 모든 공격으로부터 역사적인 기독교를 변호하고 조직적인 기독교 대신에 정상적인 교회생활을 찾은 이들을 반대할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위임 받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인 교회를 변호하는 이들의 논쟁과 의견과 변증은 그에 관한 주님의 말씀의 빛 안에서 심사숙고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이 심판하시는 것을 변호하는 사람은 그들이 사람과 동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의하지 않는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역사적인 교회의 정의

우리가 의미하는 “역사적인 교회”는 신약에서 계시되고 실행된 교회가 아닙니다. 오히려, “역사적인 교회”라는 말은 사도시대 끝부터 현재까지 발전해 온 제도적인 기독교의 조직을 뜻합니다. 이 조직은 로마 카톨릭주의와 동방정교와 개신교의 종파와 교파들을 포함합니다. 우리의 역사적인 교회에 대한 정의는 공회들과 신조들과 선언들과 앞에서 언급한 단체들의 실행들을 또한 포함합니다.

기독교계의 역사적인 발전에 대한 예언들

마태복음 13장에는 천국에 대한 일곱 개의 비유가 있습니다. 이 비유 중 첫 번째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로서 주 예수님이 왕국의 씨를 뿌리러 오셨음을 계시합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와 네 번째의 비유들은 가라지와 겨자씨와 누룩을 갖고 있는 여자의 비유로써 천국의 외형으로서의 제도화된 기독교의 역사적인 발전에 대해 주님이 예언적이기는 하나 직접적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그분은 기독교계의 진상을 밝히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비유들과 역사적 교회의 사실들을 비교한다면 놀라운 일치를 보게 될 것입니다.

가라지들, 거짓 믿는이들

가라지의 비유에서 우리는 천국의 아들들인 진정한 알곡에 대비된 사탄의 모조품을 봅니다. 곡식은 천국의 아들들이기 때문에 악한 자의 자녀들인 가라지는 분명히 역사적 교회의 다양한 단체들 안의 부분인 많은 거짓 믿는이들입니다. 역사적인 기독교의 매 부문마다 참된 믿는이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역사 안에서 구원하는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주님의 구속하시는 피로 씻김 받은 사람들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있었음을 분명하게 하길 원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 믿는이들인 가라지들이 곡식 사이에 심겨져서 이 세대 끝까지 세상에서 함께 자란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곡식과 가라지가 세상에서 함께 자란다는 사실은 가라지들이 많이 발견되는 종교적인 조직체들이 실상 세상의 부분임을 보여줍니다. 로마 카톨릭과 동방 정교와 수많은 개신교 교파에서 가라지들이 많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심각하게 의심할 수 있습니까? 역사적인 교회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곡식과 가라지가 혼합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단체들은 심지어 그러한 혼합을 자랑하고 가라지가 없는 이들을 정죄합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것을 멈추고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한 콘스탄틴 대제 때 대적이 가라지들을 심었습니다. 수천 명의 이름뿐인 믿는이들이 기독교 안으로 침례를 받고 심지어는 그렇게 함으로 로마 황제에게 상금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의 눈에 역사적 교회는 곡식으로서 그리스도를 자라게 하여 천국의 아들들로서 진정한 믿는이들을 산출하는 밭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경우 가라지가 곡식보다 훨씬 많은, 곡식과 가라지의 혼합입니다.

큰 나무-세상에서의 위대함

역사적인 교회에 관한 두 번째 비유는 겨자씨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에 따르면, 주님은 그분의 밭에 겨자씨를 뿌리셨습니다. 하지만 겨자 나물로 남아 있지 않고 비정상적으로 커져 큰 나무로 발전했습니다. 이 괴물 같은 나무에 하늘의 새들이 깃들었습니다. 이 나무의 성장은 분명히 긍정적인 발전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조직화된 기독교가 세상적인 제도로 괴상하고 비정상적으로 발전한 것을 의미합니다. 가지들, 즉 이 복잡한 종교 조직의 여러 단체들 안에 거하는 새들은 악한 사람들과 악한 것들과 악한 문제들을 나타냅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새들은 그 씨를 먹는 악한 자를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세 번째 비유에서 새들은 또한 악한 자인 사탄과 관련된 것들을 나타내는 것이 분명합니다. 게벨라인(Arno C. Gaebelein)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밭에서 자라나는 겨자 씨는 (밭이 세상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오) 이 땅에 아주 깊게 뿌리를 내리고 개들에게 자리를 줄만큼 괴이한 방식으로 확장하고 있는데...우리에게 이 땅에서 뿌리가 박혀 세상에서 위대한 것, 땅 위에서 확대되는 것을 지향하는 조직을 보여준다. 주님은... 결코 교회를 그렇게 크게 나타내지 않으셨고 땅에서 비정상적으로 자라게하지 않으셨다.

역사상 어느 시점에서 교회가 큰 나무가 되었습니까? 콘스탄틴 대제 때 기독교가 세상과 결혼한 때라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때부터 세상적인 능력이 되어 세상의 정치적인 조직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이 비유에 있는 큰 나무는 기독교계의 종교적인 조직입니다. 그 가지들은 각종 조직들이며, 새들은 악한 자들과 악한 것들과 악한 문제들로 거기에 그들의 집을 만듭니다. 주님의 의도는 그분의 교회가 작은 겨자씨가 되어 사람의 양육과 만족을 위해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탄의 악한 책략으로 역사적인 발전 안에서 교회는 큰 나무가 되어 세상에서 뿌리 내린 조직이 되었고 경건치 못한 영향을 발휘했습니다. 이것에 대하여 아이언사이드(H.A. Ironside)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곡식 밭으로 시작하여 수세기에 걸쳐 겨자 나무가 되었다. 하나님의 고백하는 교회는 열국들 사이에서 간주되는 능력이 되었지만 가지들은 모든 종류의 거짓 신앙 고백자들과 악한 교사들을 머물게 했다. 공중의 새들은 악한 무리들을 나타내고 이들은 겨자 나무의 가지에 거했다. 거짓 교회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일 때 기독교계가 수세기를 걸쳐 무엇이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생생한 그림이다.

역사적인 교회의 변호자들은 거대한 나무의 변호자들입니다. 기독교계의 조직 안에서 역사적인 교회를 영존시키려 노력하며, 교회의 참된 본성과 부르심에 관한 성경적 계시의 빛 안에서 비평하는 사람으로부터 변호하며 싸우려 합니다. 하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눈에 역사적인 기독교계는 마태복음 13장의 큰 나무입니다. 세상에 뿌리박은 악한 조직이며, 그 일원들 사이에서 거대한 것을 갈망하는 것을 낳고 양육합니다. 그러므로, 역사적인 교회가 종종 “위대한”이란 형용사를 사용하여 그 자신과 그 사업들을 설명합니다. 위대한 나무의 궁극적인 발전은 계시록 17장의 큰 성 바벨론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역사적인 교회는 더 이상 생명을 주입하는 겨자 나물이 아닙니다. 차라리 세상적인 위대함을 찾는 단체입니다.

혼합을 산출하는 누룩

누룩의 비유인 네 번째 비유에서 우리는 역사적인 교회의 더 전진되고 더욱 교활한 발전을 봅니다. 아이언사이드(H.A. Ironside)에 의하면, 이 비유에서 우리는 “거짓 교회가 부패된 가르침의 누룩을 하나님의 백성들의 음식 안으로 넣는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에서 중요한 것은 누룩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누룩은 악과 부패를 상징합니다. 레위기 2장의 소제는 누룩을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주 예수님께 누룩은 또한 악한 것을 나타내는데, 이는 그분은 우리에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마16:6, 막8:15). 아이론사이드는 바리새인들의 누룩은 “위선과 자기의 의이며, 사두개인들의 누룩은...거짓 교리와 실리주의(materialism)이며, 헤롯의 누룩은 세상적인 것과 정치적인 부패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비유 안에 고운 가루는 주 예수님, 특히 그분의 인성을 나타내고, 또한 그리스도에 관한 하나님의 진리를 나타냅니다. 누룩은 부패한 이교도의 실행들로서 역사적 교회는 이것들을 그리스도의 것들과 결합시켜 혼합물을 산출했습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그리스도의 출생은 순수한 음식인데 크리스마스처럼 이교도로부터 나와 많은 이교도의 실행들과 관련 있는 것은 누룩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부활도 음식인데 이교도의 여신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스터(부활절, Easter)는 누룩입니다. 역사적인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것들은 이교도와 혼합되었습니다. 이 혼합물은 기독교가 대중들에게 더욱 입에 맞게 받아들여지기 위한 목적으로 산출된 것입니다. 비록 역사적인 교회의 어떠한 가지들은 다른 것보다 혼합물을 덜 갖고 있었지만 어느 것도 완전하게 누룩이 제해지지는 않았습니다. 주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전체에 누룩이 스며들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계 전체에 누룩이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비유에 관해 역사적인 교회가 주는 전통적인 해석에서 누룩은 긍정적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주님의 의미와 의도와는 완전히 정반대입니다!

아마 고운 밀가루에 누룩을 넣은 여자가 누구인지 궁금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 있는 네 번째 비유와 계시록 2장에 있는 일곱 교회들에게 보내는 서신 중 두아디라 교회에 보내는 서신인 네 번째 서신을 비교하면 우리는 이 여자가 이세벨임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이 지적했듯이 여자 이세벨은 영적 간음과 우상으로 가득한 변절한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13장의 여자는 이교도의 누룩을 고운 가루에 넣는 것에 앞장 선 역사적인 교회의 가장 변절된 방면을 상징합니다. 역사적인 교회를 변호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순수한 진리에 몰래 누룩을 더한 교리와 실행의 조직을 변호하는 것입니다.

기독교계의 현황

이 시점에서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이러한 비유들의 빛 안에서 역사적인 교회의 현황을 생각해 보시라고 권하겠습니다. 특별히 역사적인 기독교계의 세 뛰어난 특징들에 주의해서 생각해 보십시오: 가라지들, 수많은 거짓 믿는이들; 큰 나무, 세상적인 위대함을 추구하고 많은 세상적인 실행들을 취한 복잡한 종교적인 조직; 누룩, 그리스도에 관한 순수한 말씀에 악한 것들과 이방 실행들을 더해서 생긴 혼합물. 주님이 얼마나 가라지들과 큰 나무와 누룩을 미워하시는지요! 확실히 그분은 그분 자신에 관한 진리와 이교도의 것들을 혼합한 여자 이세벨의 행위를 정죄하십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역사적 교회에 관한 평가 중 누구의 평가를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변호자들의 평가입니까? 아니면 주 예수님의 평가입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독교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안다면 어떻게 기독교계를 영존시키고 진행시키고 건축하는데 한 부분이 되겠습니까? 만약 마태복음 13장에 있는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비유가 역사적 교회의 실상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을 나타내는 것입니까? 종교적 체계를 마음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희석하면 않됩니다. 가라지들과 새들과 누룩과 타협할 수 없습니다. 이교도의 관습으로 그리스도의 순수한 말씀에 누룩을 넣는 여자를 묵인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갈망

주님은 가라지가 없는 교회, 세상으로부터 분별된 교회, 순전히 그분으로부터 나온 교회를 갈망하십니다. 그분은 곡식과 겨자 나물과 음식의 교회를 갈망하십니다. 그러한 교회는 하나님과 사람 모두를 만족케 하는 음식을 산출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러한 교회가 오늘날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님 앞에서 우리는 반드시 이것이 가능할 뿐 아니라 주님의 필요와 그분의 갈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사실에 대해 간증을 짊어져야 합니다. 오늘날 실질적인 방식으로 그러한 교회가 존재하기 위해서 우리는 절대적으로 주님을 찾아야 하며, 우리 자신을 순전히 그분께 헌신해서 그분의 마음의 갈망을 성취하시는데 한 부분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영적인 문제가 아니라 실질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라지와 큰 나무와 누룩으로부터 구별됨을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대에 합당한 교회생활을 위해서 그분의 갈망을 성취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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