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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문답자에 대한 답변 (계속됨)

 
 


2월 11일, 18일

거짓 가르침을 드러냄

성경 문답자가 계속해서 공격함

1977년 10월 2일 크리스챤 리서치 인스티튜트(Christian Research Institute)의 대표는 4,000명의 군중 앞에서 윗트리스 리와 지방교회들을 향해 공개적인 공격을 가했습니다. 그 이후 윗트리스 리와 지방교회들의 대변인들은 매주 “The Register”라는 신문을 통해 성경 문답자의 비난들을 반론해왔습니다. 성경 문답자는 우리가 그를 개인적으로 공격하며 자신이 종결시키기를 원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던 논쟁을 지속한다고 우리를 비난해왔습니다. 그러나 그 대표와 그의 리서치 인스티튜트(Christian Research Institute)는 지방교회들과의 지면 논쟁을 더 이상 지속하기를 원치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말함과 동시에 윗트리스 리와 지방교회들을 반대하는 “윗트리스 리와 지방교회들의 가르침”이란 소책자를 준비해 출판했습니다. 이 소책자는 성경 문답자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선전했고 지금 청중에게 판매되고 있습니다.

지난 4개월간 지방교회들은 누구도 지방교회의 교리와 체험에 관하여 의혹을 품지 않도록 매주 충분한 양과 깊이의 반론글들을 펴냈었습니다. 그러나 CRI(Christian Research Institute)는 지난 4개월간 우리가 써온 모든 것을 거의 대부분 경시하는 21 페이지의 소책자를 출판했습니다. 이것은 사실을 따르는 데 있어서의 그의 전통성과 정직성에 대해 큰 의문을 남깁니다. 그와 그의 연구는 우리가 말한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다만 우리를 비난했습니다. 그들은 똑같은 옛 논쟁들을 끄집어내 다시 되풀이합니다. 분명히 그들은 의미 깊은 대화를 지속하려 하지 않고 단지 그들의 비난들만을 되풀이 하기를 원합니다.

코끼리가 수고해서 생쥐를 가져왔다.

성경 문답자는 몇주에 걸쳐 그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출판 예정인 소책자를 광고했습니다. 마침내 지방교회들 안에 있는 우리들은 그 소책자가 완성되었을때 이 책의 출판이 꽤 오랜 시간의 준비과정 가운데 있었고 또 리서치 인스티튜트(Christian Research Institute)가 준비했기 때문에 우리의 글들을 답변하는 그 소책자가 자세하고 명확한 학술물이길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당황스럽게도 출판되어진 것은 3페이지의 각주를 포함하고 피상적으로 교정되고 활자로 짜지지도 않은 21페이지의 소책자였습니다. 성경 문답자와 그의 인스티튜트(Christian Research Institute)가 청중에게 성경과 정통에 대한 권위로서 자신들을 전한 사실에 비추어서 이 출판물을 고려해볼 때 누구라도 고개를 흔들며 코끼리가 수고해서 생쥐를 가져온 것이라고 밖에는 결론 내릴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문답자의 거짓 가르침들

그 소책자 2 페이지에는“성경과 비교된 지방교회의 가르침들”이란 제목의 한 단락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그 소책자의 저자들, 즉 성경 문답자의 연구진 세 명은 지방교회의 가르침을 성경과 비교한다는 그들의 의도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목할만한 것은 성경과의 비교는 매우 적고 오히려 많은 여러 신학자들의 조직신학들과의 비교와 역사가들로부터의 인용구들과 초기의 종교회의들과 신조들의 언급들과 여러 저자들의 인용구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저자들이 진술한 의도는 윗트리스 리와 지방교회들의 가르침들을 성경과 비교하는 것이었으나 이 책에서 이러한 의도의 성취를 찾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이 페이지들을 통해서 보여지는 성경 문답자의 동료들의 몇몇 교리들과 가르침들은 전혀 성경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진술한 의도가 모든 가르침들을 성경과 비교하는 것이었으므로 나도 이 소책자에 나타나는 그들의 가르침 중 몇 개를 살펴보고 그것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상반되는 것을 지적하겠습니다.

1. 분열에 관하여

2 페이지 첫째 문단에서 성경 문답자의 연구진들은:

우리가 이들의 가르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기 위해서는 먼저 카톨릭과 개신교를 포함하는 모든 교단들을 향한 지방교회의 태도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윗트리스 리는 “중립적이지 마십시오. 그들과 조화를 이루려고도 하지 마십시오....여러분은 교파가 틀렸음을 알고 있음에도 다른 사람들의 말이 두려워 여전히 교파에 머무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윗트리스 리와 지방교회에게는 모든 교파가 틀린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명백히 성경 문답자와 그의 연구진들에게는 교파들이 틀린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윗트리스 리와 지방교회가 교파들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에 대하여 비난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교파들을 옳다고 여기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과 대조됩니까? 그들이 매우주의 깊게 모든 가르침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비교되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으므로 그들의 교파에 관한 관점을 성경과 대조해보겠습니다.

먼저 지적하기 원하는 것은 성경은 교파들의 어떤 것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파란 한 특정한 무리의 그리스도인들이 따르는 어떤 사람의 이름을 따라서 불려지거나 또는 그들이 강조하는 실행을 따라서 불려지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의 분열입니다. 루터교도들이 루터라는 사람을 따라서 명명되어지는 반면 침례교도들은 침례의 실행을 따라서 명명되어집니다. 성경에는 명명되어진 교회와 같은 그러한 것이 없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침례교회가 없었고 단지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가 있었을 뿐입니다(행 8:1). 고린도에는 바울의 교회가 없었고 단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만이 있었을 뿐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0절에서 분쟁 혹은 당짓는 것이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함께 육체의 일로 열거되어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대표들에 대한 그들의 선호에 기초하여 갈라지기 시작했을 때 바울은 그들에게 “그리스도가 나뉘어졌느냐?”(고전 1:13) 라고 물었습니다. 교파들이 틀렸다고 말하는 윗트리스 리를 공격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성경 문답자의 연구진들이 그들의 관점에서 교파들이 옳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기독교의 분열된 상태에 동의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의 분열을 영속시키는 것을 돕습니다. 헬라어에 따르면 로마서 16장 17절은 우리에게“분열을 일으키고 너희가 배웠던 가르침에 상반되는 범죄를 행하는 자들을 경계하라”고 권면합니다. 누구든지 심지어 크리스챤 리서치 인스티튜트(Christian Research Institute)의 연구진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몸안에서의 분열이 옳다고 가르치거나 분열을 지속시키는 자들을 경계하고 그들로부터 반드시 돌아서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입니다.

2. 하나님에 관하여

그들의 소책자 중 “하나님의 본성”이란 제목의 한 부분에서 리서치 인스티튜트(Christian Research Institute)의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통상적으로 삼위일체의 교리는 본질상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진다: “한 영원한
하나님의 본성 안에는 세 분의 영원히 다른 인격들인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있다. 이 세 분은 같은 하나님이고 모두 온전히 하나님이지만 아버지는 아들도 아니고 성령도 아니며, 아들은 아버지도 아니고 성령도 아니다. 그리고 성령은 아버지도 아니고 아들도 아니다”(p. 2).

이것은 성경으로부터의 인용구가 아닙니다.

인스티튜트(Christian Research Institute)의 저자들이 모든 것들을 성경과 비교하는 것을 열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은 조직신학 책으로부터 인용한 삼위일체론에 관한 진술로 그들의 논제를 시작했습니까? 삼위일체론에 대한 그들의 정의를 말한 후에 인스티튜트(Christian Research Institute)의 저자들은 “그러나 지방교회는 이것에 상반되게 가르친다”라고 말함으로 우리를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삼위일체론에 관한 그러한 진술을 성경에서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의심할 바 없이 그들이 성경으로부터 인용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삼위일체의 삼신론적인 견해는 단지 신학책에서만 발견할 수 있지 성경에서는 발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 관한 그러한 견해는 성경에서 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삼신론적 관념은 절대적으로 성경에 상반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사상은 이사야 9장 6절과 요한복음 14장 9-10절과 고린도후서 3장 17절과 같은 구절들에 있는 하나님 말씀에 의해 제시된 신격의 세 분의 상호침투를 부인합니다. 멜로디랜드 신학교의 학장인 윌리암스(J. Rodman Williams)는“The Pentecostal Reality”란 제목의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신성한 삼위일체에 관한 교리를 가르친다면 우리는 깊은 심각성을 가지고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 그러나 사실 성경에는 삼위일체에 관한 교리가 없다(p. 100).

이것은 삼일 하나님에 관하여 성경에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 윌리암스 박사도 우리도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성경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 관한 언급들로 꽉 차있습니다. 그러나 그 리서치 인스티튜트(Christian Research Institute)가 우리로 하여금 믿게 하려는 그러한 삼위일체의 교리는 성경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방교회들 안에 있는 우리들은 하나님에 관한 우리의 견해가 어떤 신학자의 정의와 비교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고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비교되어야 합니다.

3. 그 영에 관하여

인스티튜트(Christian Research Institute)저자들은 윗트리스 리를 다음과 같이 경멸적인 어투로 인용했습니다:“....아들은 우리가 생명의 물처럼 마시기만을 위해 그 영이 되셨다....”(p. 4). 연구진들은 우리에게 그들이 이것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요한복음 7장 37-39절을 설명할 것입니까? 이 구절들의 헬라어 직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그로 내게 와 마시게 하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이 말한대로 그의 배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그러나 그분 안으로 믿는 자의 받을 그 영에 관해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아직 영광받지 아니하셨기 때문에 그 영이 아직 계시지 않았다.

이 구절들은 여섯 가지 분명한 사실들을 나타냅니다:

  1. 예수님은 목마른 자들은 그분에게 와서 마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누구든지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예수님 안으로 믿는 자들은 그의 존재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넘칠 것입니다.
  3.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모든 것은 그 영에 관한 것입니다.
    1. 그분에게 오는 것은 그 영에게 오는 것입니다.
    2. 그분을 마시는 것은 그 영을 마시는 것입니다.
    3. 흘러넘치는 생수 또한 그 영입니다.
  4. 37절에서 예수님은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 그러나 요한은 39절에있는 주님의 말씀을 “예수님이 그 영에 관해 말씀하셨다”라고 해석합니다.
  6. 더 나아가 요한은 다음과 같이 해석했습니다:
    1. 예수님 안으로 믿는 자들은 그 영을 받을 것입니다.
    2. 그러나 예수님이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그의 새로운 나타남에서 영광을 받은 예수의 영으로서의 그 영이 아직 없었기 때문에 이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서 분명히 말하듯 윗트니스리도 “아들은 우리가 생명수로서 마시기 위해 그 영이 되셨다”라고 합니다. 성경 문답자의 동료들은 이 부분의 하나님의 말씀에 전혀 익숙하지 않음이 명백합니다.

4. 몸에 관하여

이제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관한 놀랍고도 충격적인 무지를 보겠습니다. 성경 문답자의 동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그리스도는 교회 위의 가장 뛰어난 분이시지만 교회의 부분은 아니다.”그들은 그리스도가 단지 비유적인 의미에서만 몸의 머리이고 전혀 몸이 아니라고 말합니다(p. 8). 이것은 분명히 성경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비유나 상징을 사용하는 정확한 길이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교회는 그의 몸(엡 1:23)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이것이 비유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사실로서 제시합니다. 골로새서 1장 18절은“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고 말하고, 고린도전서 12장 12절은“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 말합니다. 만약 성경에 있는 구절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면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한 개인으로 계셨을 때 그분은 그분의 사명을 수행할 한 개인적인 육체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죽음과 부활 이후로 그분은 그분의 몸을 구성하는 많은 지체들 안에 거하시고 많은 지체들인 교회는 이 땅에서의 그분의 몸입니다. 성경 문답자와 그의 동료들이 이것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들이 비참할 정도로 성경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과 그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거의 체험하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해줍니다.

5. 실질적인 하나됨에 관하여

성경 문답자의 대표진들은 성경에 나타난 몸의 하나됨의 실질적인 표현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어떤 도시에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의 진정한 대표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p. 10). 그들은 성경 안에 그리고 성경 이후로 어느 도시에든지 다수의 교회들이 있다고 성경이 가르친다고 믿으며 바울이 로마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를 예로 들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로마에 있는 [한]교회에게 편지했고 그 교회에게 로마에 있는 다른 교회에게 문안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합니다. 나는 성경 문답자와 그 동료들에게 로마인들에게 쓴 바울의 편지 어디에서 바울이 그 도시의 한 교회에게 문안했고 그 교회가 그 동일한 도시에 있는 다른 교회에 문안해 달라고 부탁했는지 지적해 주기를 원합니다. 여기에서 윗트리스 리와 지방교회들을 공격하는 그 소책자의 저자들은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고 그들의 상상 속으로 빠져들어갔습니다. 성경을 해석할 때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선호나 편견을 따라 읽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매우 분명한 방법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로마서에 나타난 교회 문제에 관하여;

  1. 로마서 어디에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한 특정한 교회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2. 로마서 어디에도 바울이 로마시에 있는 두 교회에게 문안하지 않았습니다.
  3. 로마시에 있는 교회에는 오직 한 문안만이 암시되었고 표현되었습니다. 이것은 로마서 16장 5절에 기록되어져 있습니다:“그들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라”. “그들의 집”이란 3절에서 언급된 바울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입니다. 이것이 이 전체 서신에서 언급되어진 로마에 있는 교회를 향한 문안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로마에 있는 한 교회에게 로마에 있는 또 다른 교회에게 문안하라고 썼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속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해석입니다.

성경 전체에는 한 도시 안에 하나 이상의 교회에 대한 예가 없습니다. 사도행전 21장 20장에 따르면 수만의 믿는이들이 있던 예루살렘 교회도 여전히 한 그룹의 장로들(행21:18)을 가진 예루살렘에 있는 한 교회(행8:1)였습니다. 의심할 바 없이 그렇게 큰 교회인 예루살렘에 있는 믿는이들은 많은 여러 가정들에서 모였지만(행2:46; 5:42) 여전히 한 행정 아래 있는 한 교회였습니다.

6. 성경에 관하여

그들의 소책자 15 페이지에서 비평가들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어떤 종교적인 신앙에 관련하여 연구할 것이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는 단지 지방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이“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던(행17:11)”신사적인 베뢰아 사람들과 같기를 격려한다. 여기에서 누가는 베뢰아 사람들이 바울이 복음을 전했을 때 그들이 들은 복음을 성경에 의해 검증하였기 때문에 “신사적”이었다라고 말한다. 확실히 바울의 전파를 성경에 의해 검증했기에 베뢰아 사람들이 신사적이었다면 지방교회의 구성원들과 지방교회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 또한 성경으로 검증하여야 한다.

이 구절에 대한 그들의 해석은 그들의 생각이 어떻게 성경의 의미를 성경이 말하지 않는 다른 의미로 바꾸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들은“베뢰아 사람들은 심지어 바울이 말한 것조차 성경으로 검증하였기 때문에 신사적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기 때문에 신사적이었다고 합니다. 이 구절에 있는 요점은 바울이 베뢰아에 갔을 때 그가 다른 곳에서 자주 부딪혔던 악한 영향들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뢰아 사람들은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직접적으로 날마다 성경을 깊이 숙고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았습니다. 리차드 렌스키(Richard Lenski)는 사도행전에 대한 그의 주석에서 이 구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여기에서는 처음부터 그것이 어떤 종류이든지 상관없이 반대만을 구했던 눈멀고 이치에 닿지 않는 적대감이 없었다. 여기에는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에 대해 관심 없는 차가운 무관심도 없었다. 시간과 연구와 조사와 토론이 성경과 또 성경이 이 새로운 가르침에 대해 무엇을 담고 있는지를 찾아내는 데에 충분히 드려졌다(pp. 700-701).

이것이 사도행전 17장 11절의 요점이며 바로 오늘날 너무나 부족한 것입니다. 유감스러운 것은 성경문답자와 그의 동료들은 오늘날 쏟아져 나오는 말씀을 받을 수 있는 간절한 마음이 없습니다. 또 유감스러운 것은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에 있어 베뢰아사람들이 보여준 그 동일한 신사적임을 그들이 나타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윗트리스 리의 가르침을 성경이 아니라 그들의 선입견으로 분석했습니다. 그들은 윗트리스 리의 책에서 여기서 한 줄 저기서 한 줄씩 떼어 그의 말들을 비틀어 꼬며 그의 가르침들을 성경구절들과 신학책들과 비교했습니다. 그들은 확실히 “신사적인” 베뢰아인들과 같은 동일한 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7. 육체에 관하여

그 비평가들은 그들의 소책자 17 페이지에서 사람이“사탄의 체현”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에 위배된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마태복음 16장 23절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인“사단아 물러서라!”를 어떻게 해석할 것입니까! 확실히 이 구절에서 예수님은 베드로를 사탄의 체현이라고 간주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소책자의 저자들은 계속해서 바울이 육체가“도덕적으로 중립적(p. 17)”이라고 가르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로마서 8장 3절 말씀인“하나님이 그의 자신의 아들을 죄의 육체의 모양으로 보내셔서, 죄에 대하여 그는 육체 안에 있는 죄를 정죄하셨다“와 맞지 않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확실히 육체를“도적적으로 중립적”인 것으로서 간주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것을 죄의 육체라고 부르며 육체 안에 있는 죄에 대해 언급합니다. 비평가들은 더 나아가서 육체가 단지“도덕적으로 중립적”일 뿐만 아니라“일반적으로 좋은”것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이러한 경우에 있어서 우리는 어떻게“일반적으로 좋은”육체를 갈라디아서 5장 19-20절 말씀과 조화시킬 수 있습니까?“이제 육체의 행위는 현저하니 그것들은 간음과 불결과 욕정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맺음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논쟁과 분열과 나뉘임과 투기와 술취함과 흥청망청대고 노는 것과 이와 같은 것들이다”(헬라어). 또한 로마서 7장 18절에서 바울이 말한“내가 아는 것은 내 육체에 선한 것이 아무 것도 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는 어떻습니까? 성경이 말하는 육체는 간음과 우상숭배와 바울이 말한 다른 모든 악한 것들을 산출합니다. 확실히 성경 문답자의 동료들은 타락한 사람의 육체가 “도덕적으로 중립적”이며“일반적으로 좋은”것이라는 사상을 성경으로부터 유도하는 독특한 선입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8. 하나님의 체현으로서의 교회에 관하여

윗트리스 리와 지방교회들을 대적하는 그들의 소책자에 있는 또 다른 독특한 사상은 다음과같습니다:“교회 자체가 육체로 나타난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경에 위배되는 것이다”(p. 18). 나는 비평가들에게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만약 교회가 하나님의 체현이 아니라면 무엇의 체현입니까? 분명 그리스도의 개인적인 몸은 하나님을 나타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그는 아버지의 체현이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은 분명하게 말합니다:“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헬라어). 이 구절에 따르면 주님의 몸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던 장막이었습니다. 이제 에베소서 1장 22-23절에 따르면 교회는 오늘날 그분의 몸입니다. 오늘날 이 땅 위의 진정한 교회인 하나의 단체적인 장막에서 하나님이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신다고 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사도행전을 읽을 때 사도행전에 있는 교회가 육체 안에 있는 하나님의 체현임을 누가 의심할 수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12장 7절에서 바울은 “성령의 나타나심”에 관해 말하지만 누구든지 이 장의 나머지를 읽을 때 성령의 나타나심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몸이라는 단어가 이 장에 최소한 15번 나오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24-25절에서 교회 집회에 관하여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다 예언(신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

바울은 교회 집회들이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누가 들어오든지 심지어 낯선 사람이라 할지라도 여기 이 집회에서 나타나는 것이 하나님이라는 인상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경 문답자의 동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교회가 육체로 나타난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성경이 말하는 것과 정반대의 해석을 끌어 내는 그들의 해석 기준은 기묘합니다.

앞으로 나올 더 많은 것들

앞으로 몇 주에 걸쳐 지방교회에 있는 우리들은 크리스챤 리서치 인스티튜트(Christian Research Institute)가 만들어 배포한 그 소책자에서 말하는 중상모략적이고 근거없는 비난들을 반론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에 있어서 우리는 그들이 세워놓은 기준인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과 비교하는 것”을 정확하게 따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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