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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문답자에 대한 답변 (계속됨)

 
 


2월 25일

삼일 하나님에 대해 기쁘게 변호함

크리스챤 리서치 인스티튜트에서 최근에 윗트니스리와 지방 교회들의 가르침들이라는 제목의 소책자를 출판하였습니다. 이 소책자는 “하나님에 대한 지방 교회의 교리는...하나님의 말씀에 상반된다...반드시 크리스챤들에 의해 이단이라고 거부되어야 한다”(pp.8-9). 지방 교회들 안에 있는 우리는 비슷한 환경에서 사도 바울이 표현한 것 같은 태도와 간증으로 이러한 비난에 반응합니다, “...기쁘게 변명(변호)하나이다...이제 나를 송사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저희가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행24:10, 13-14).

바울의 태도와 일치하여 지방 교회들 안에 있는 우리도 마찬가지로 삼일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체험을 성경적으로 변호할 기회를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가 삼위일체 이단인 “계승하는 양태론”과 소위 “정지된 양태론”을 가르친다는 비난에 대하여 크리스챤 리서치 인스티튜트가 출판한 소책자는 어떠한 증거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우리의 의견을 밝힙니다. 이것은 위 소책자를 쓴 사람들이 네 분야에서 불완전한 것을 드러냅니다:

  1. 모든 성경이 삼일 하나님을 계시하는 것에 관한 계시가 부족함.
  2. 양태론의 역사와 의미에 관한 지식이 부족함.
  3. 그들이 윗트니스리와 지방 교회들이 출판한 모든 자료들에 대해 연구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복해서 보여줌.
  4. 정직한 학문의 기준에 따라 우리의 글들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능력이 부족함.

결국, 크리스챤 리서치 인스티튜트에서 이단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상 삼일 하나님의 계시에 관하여 성경이 기록한 모든 것들에 대한 간증임이 증명되었습니다.

지방 교회들 안에 있는 우리는 크리스챤 리서치 인스티튜트가 삼일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기쁜 변호를 신중하게 고려해 주길 부탁합니다. 먼저, 소책자의 전통적이고 단지 교리적인 표현에 대조적으로 우리는 성경적인 용어와 체험의 언어를 고수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계승하는 양태론”을 가르친다는 비난에 대조되게 우리는 삼일 하나님에 대한 역사적인 계시를 믿습니다. 셋째로, 우리가 소위 “정지된 양태론”이라는 것을 가르친다는 비난에 상반되게도 우리는 삼일 하나님 내의 관계의 성경적 계시를 알고 있습니다.

1. 성경적 용어와 체험의 언어

삼일 하나님은 성령이 선택한 언어로 성경에 계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삼일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말은 성경적 용어의 한도 안에서 머물러야 합니다. 신학의 용어와 공회들과 신경들과는 반대로 성경적 용어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그분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표현과 계시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적 용어는 삼일 하나님에 대한 가장 높은 계시입니다. 삼일 하나님에 관한 우리의 이해와 말과 체험 안에서 성경적으로 남아있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성경이 말하는 방식으로 말해야 합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 대하여 성경이 말하는 특별한 방식은 단지 하나님이 삼일이심을 계시할 뿐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체험의 정확한 느낌과 뜻을 전해줍니다.

삼일 하나님에 대한 성경의 계시는 체험의 언어로 나타난다는 것을 깨닫는 것도 또한 극히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계시의 표현은 삼일성의 교리에 대한 분명한 지적 이해보다도 체험의 표시를 지닙니다. 삼일 하나님에 관한 계시가 체험에 주어졌기 때문에 삼일 하나님에 관한 합당한 이해는 반드시 체험의 영역과 환경 안에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이 따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삼일 하나님에 대한 계시는 체험의 틀 안으로 부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이 계시를 체험의 언어 안에서 지킴으로 보호해야 합니다.

삼일 하나님에 관한 체험의 언어는 항상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정결한 신경의 범주 안에 넣기를 좋아하는 신학적인 생각을 괴롭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격의 세 분에 관한 바울의 체험적인 말들은 항상 사람의 생각이 삼일 하나님을 충만하게 이해하는데 제한됨을 지속적으로 증거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비록 이해는 제한되지만 삼일 하나님에 대한 체험의 실재는 결코 저지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서 발견되는 삼일 하나님의 용어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 대한 참된 체험을 정확히 부합하고 표현합니다.

믿음과 체험 안에 성령 이란 루이스 험프리(A. Lewis Humphries)의 저명한 책은(p.219) 삼일 하나님에 대한 신약 계시에서의 같은 특징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을 철저하게 연구하여 우리가 분명해진 것은 그 생각들과 용어들이 추측의 환경이 아니라 체험의 환경 안에서 적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진리들을 보는 각도는 생명 안에서 진리가 나타나는 각도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영에 대하여 말할 때, 그것은 그가 움직이고 있던 추상적인 일반화의 세상 안에서가 아니라 교회에 관한 직적접인 체험의 범주 안에서 한 것이다. 한마디로, 이것은 바울과 다른 신약의 기자들이 형성하기를 구했던 영에 대한 그리스도인 체험이다.

2. 삼일 하나님에 관한 역사적인 계시

삼일 하나님에 관한 성경적인 이해는 성경에서 발견되는 것처럼 계시의 사실들에서 얻어집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단지 신격 내에서 존재하는 관계를 계시할 뿐만 아니라 또한 사람을 위한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는 과정 안에서 삼일 하나님을 계시합니다. 프란츠 델리취(Franz Delitzsch)는 이 부분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에 관한 삼위일체의 관념은 철학적 추측의 산물이 아니라 신약뿐 아니라 구약의 계시의 사실들의 반영이다”(구속의 구약역사, p.178).

삼일 하나님에 관한 역사적인 계시 안에서 우리는 그분의 삼일 존재의 실질적인 목적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점진적으로 계시될 때 우리는 삼일 하나님이 그분의 경륜과 사람과의 관계에서의 계획을 역사해 나가시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실상, 삼일 하나님의 계시는 사람을 향한 그분의 목적의 배경 안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삼일 하나님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는 반드시 그분의 사람에 대한 관계의 시각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와 성육신과 구속과 내주하심과 성화와 영화롭게됨이란 그분의 계획을 역사하실 때 그분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나타나십니다. 삼일 하나님은 추측 신학의 목적을 위하여 성경에 계시되어 있지 않으시고 사람과 함께 그분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는 실제의 체험의 배경 안에서 계시되어 있습니다.

역사적인 계시 안에서 삼일 하나님의 경륜의 방면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에서 발견됩니다. 창세기 1장 26-27절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한 내용에서 삼일 하나님을 계시합니다. 요한복음은 그분의 구속의 성취에서 삼일 하나님을 계시합니다(특별히 요1:1-2, 14, 7:37-39, 14-17장, 20:22). 마태복음 28장 19절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어 족속들을 구속하는 유익을 적용하는 내용에서 삼일 하나님을 계시합니다. 로마서 8장 9-11절과 갈라디아서 4장 6절은 사람에게 생명을 주기 위하여 사람 안에서 내주하심에 대한 삼일 하나님을 계시합니다. 고린도 후서 13장 13절은 교통과 누림의 영역 안에서의 삼일 하나님을 계시합니다. 베드로 전서 1장 2절은 그분의 성화의 역사의 내용 안에서의 삼일 하나님을 계시합니다. 계시록 21장 22-23절과 22장 1-5절은 새 예루살렘 안에서 그분의 궁극적인 영화롭게됨 안에서의 삼일 하나님을 계시합니다.

삼일성의 성경적 계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사람을 위하여 사람 안에서 무엇을 하심의 역사적인 나타나심 안에서 뿌리 박혔습니다. 삼일 하나님의 계시의 이러한 방면은 3세기에 이단적인 사벨리우스가 신격의 구분을 부인하며 가르쳤던 계승적인 양태론으로 이해 되어서는 않됩니다. 오히려, 그분의 영원한 목적의 성취를 위하여 사람 안으로 그분 자신을 분배하는 그분의 계획과 관련된 삼일 하나님의 역사적인 계시의 계승하는 과정들입니다.

3. 삼일 하나님 내에서의 관계

성경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외적인 역사적 나타남을 계시할 때 우리는 또한 성경에서 삼일 하나님 내에서 존재하는 관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관계는 하나님이 세 분이시며 동시에 또 한 분이심을 보여주고, 또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나뉠 수 없는 하나됨을 나타냅니다. 삼일 하나님 내에 이 관계는 성경의 두 종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삼일 하나님의 하나를 보여주는 첫 번째 종류의 성경구절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사이에 존재하는 내적 관계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 관계는 상호침투와 서로 안에 내주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나뉘지 않고 상호적으로 서로 안에서 내주하는 것입니다. 이 상호침투를 보여주는 성경의 종류는 신격 내에서 존재하는 하나됨의 본성의 어떠함을 드러냅니다.

삼일 하나님의 하나됨을 보여주는 두 번째 종류의 성경구절은 삼일 하나님의 외적 표현과 기능에 관계된 것입니다. 특별히 그분에 대한 사람의 주관적인 체험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성경 구절 안에서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관계는 동일함의 하나입니다. 그것은, 삼일 하나님의 하나됨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표현과 기능에서 동일화됨의 그러한 본성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동일화는 특별히 한 분이 다른 분이며, 또한 세 분이 사람의 체험에 관하여 바꾸어 쓸 수 있음을 말해주는 성경구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세 분의 동일함을 계시하는 이 성경구절들은 또한 신격 내에서 존재하는 하나됨의 본성의 어떠함을 보여줍니다.

세 분의 상호침투와 동일함에 관한 두 가지 성경 구절들은 하나됨을 간증하고, 하나됨을 계시하고, 하나됨을 표현합니다. 그러나, 세 분의 이 하나됨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서의 그들의 구분됨을 무효화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은 영원히 동시에 세 분이시며 한 분이십니다. 상호침투를 말하는 성경구절들은 그들 사이의 나뉠 수 없는 관계의 하나됨을 강하게 나타내고 그러므로 나뉨 없이 그들의 구분을 보존합니다. 또한 동일한 성경구절들은 세 분 사이의 구분을 버리지 않고 취하며 그들의 하나됨의 높음을 나타냅니다. 신격 안에서의 구분은 하나됨 안에서와 하나됨의 구분이지 하나됨의 자격을 주는 구분도 아니고, 하나됨의 위치를 빼앗는 구분도 아니고, 하나됨을 파괴하는 구분도 아닙니다. 다시 한 번, 두 가지 성경구절의 상호침투와 동일함은 우리의 한 하나님의 하나됨을 나타냅니다.

윗트니스리와 지방 교회들이 소위 정지된 양태론 이라는 것을 가르친다는 비난은 상호침투와 동일함 안에서의 우리의 믿음으로 충분히 반론되었습니다. 다음 주의 기사는 삼일 하나님의 하나됨을 나타내는 두 종류의 성경 구절들에 관하여 자세히 검토함으로 삼일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기본 변호를 계속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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