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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문답자에 대한 답변 (계속됨)

 
 


3월 4일

삼일 하나님의 하나됨

이 기사는 최근에 크리스챤 리서치 인스티튜트가 윗트니스 리와 지방 교회들의 가르침들이란 제목으로 출판한 소책자에 관한 성경적 답변의 연속입니다. 삼일 하나님 안에서의 우리의 믿음에 관한 이 책의 비난들에 답하며 지방 교회들 안에 있는 우리는 삼일 하나님의 하나됨을 보여주는 세 종류의 성경 구절들을 함께 검토해 보도록 출판업자들을 공개적으로 초대합니다:

  1. 상호침투 의 의미를 보여주는 성경 말씀은 삼일 하나님 안에 존재하는 하나됨의 내적 관계를 계시함.
  2. 동일시 의 의미를 보여주는 성경말씀은 삼일 하나님의 하나됨의 외적 표현을 계시함.
  3. 서로 바꾸어쓸 수 있음 을 보여주는 의미의 성경 말씀은 사람의 체험 안에서 삼일 하나님의 한 운행을 계시함.

1. 상호침투의 의미를 보여주는 성경말씀

이러한 성경 구절들은 삼일 하나님 안에 존재하는 하나됨의 내적 관계를 계시합니다. 예를 들어, 아들과 아버지의 상호침투는 요한복음 14장 10절에서 예수님이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고 하신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상호침투와 상호내주의 관계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신격 안에 각각은 서로 상호침투하고 상호내재하는데 이는 각각이 영원토록 서로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제미슨(Jamieson)과 포셋(Faussett)과 브라운(Brown)의 주석은 요한복음 14장 10절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상호내재(mutual inbeing)..." 이 상호내재와 상호침투는 삼일 하나님이 분리될 수 없고 유일한 한 분이시며 또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신격 안에서 구별됨을 보존하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5세기의 오거스틴은 이 진리를 그의 고전적인 삼일성 위에서(On the Trinity)(Book VI:10:12)이렇게 요약했습니다: “...가장 높은 삼일성 안에서 하나는 셋이 함께 하는 만큼이며 둘이 하나 이상도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 스스로 무한하다. 그래서 각각이 각각 안에 있고, 모두가 각각 안에 있으며, 각각이 모두 안에 있고, 모두가 모두 안에 있고, 모두가 하나 안에 있다.”

요한복음 16장 13-15절에서 주님은 신격 안에 있는 이러한 상호침투에 대하여 한 단계 더 전진하여 보여 주셨습니다:“...성령이...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 이러한 구절들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침투의 내적 관계를 보여줍니다.

먼저, 성령의 말씀하심은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입니다. 그 말은, 신격 안에 성령의 말씀하시는 근원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이며 이것은 세분의 상호침투를 나타냅니다. 둘째로, 성령이 가지시는 것은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라고 설명했는데 그것은 신격 안에서 성령의 위치를 취하심은 아들과 아버지로부터 나온 것인데 이는 세 분의 상호침투를 나타냅니다. 셋째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상호침투는 또한 성령의 들으심의 내적 본성에 의해 나타났습니다. 성령에 관한 주님의 말씀들, “그가 듣는 것을 말하시며”, 는 신격 안에서의 들으심을 나타냅니다. 마르틴 루터는 요한복음 16장 13절에 있는 성령의 들으심의 본성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여기서 믿음은 반드시 모든 피조물들을 무시하고 반드시 물질적인...들음에 대하여 집중하지 말아야 하며, 반드시 신격의 본질 안에 있는 고유한 들으심으로서 받아들여져야 한다”(Luther's Works, Vol.24 p.364). 존경 받는 신약 주석가인 마이어박사(H.A.W.Meyer) 역시 요한복음 16장 13절에 있는 성령의 들으심의 본성에 대하여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진 주체로서 외적으로 하나님을 듣는 것이 아니라 (고린도전서 2장 11절과 비교) 내적으로 받아서 들으신다. 왜냐하면 그분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으로 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5:26] (Critical and Exegetical Handbok of the Gospel of John, Vol. II., p.268).

상호침투를 말하는 성경구절은 삼일 하나님 안에 존재하는 하나 됨의 내적 관계를 보여줍니다. 또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구별 됨을 보여주는데 이 구별 됨은 신격 안에서의 분리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상호침투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서로 안에서 영속적으로 존재하여 그들의 표현 안에서 그들은 동일시됩니다.

2. 동일시를 말하는 성경 구절

이러한 성경 구절들은 아들을 아버지와 그리고 주님을 성령과 동일시함으로 삼일 하나님의 하나됨의 외적 표현을 보여줍니다.

a) 이사야서 9장 6절은 아들과 아버지를 동일시합니다:“...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한 분이 또 다른 분이라고 보여주는 이러한 성경 구절은 반드시 세 분이 서로 상호침투하심을 보여주는 성경구절과 함께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이사야가 아들이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말한 것 알기 위해서는 요한복음 14장 10절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것이 필요합니다:“...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한 말은 아들과 아버지를 동일시하고, 다른 말은 아들과 아버지의 상호내주 혹은 상호침투를 나타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상호 침투를 말하는 성경 구절들은 내적 존재의 각도에서 삼일 하나님의 하나됨을 바라보고 동일시를 말하는 성경 구절들은 외적 표현의 각도로부터 같은 하나됨을 바라봅니다. 둘 다 하나님의 말씀이며 반드시 함께 취해져야 합니다.

b) 요한복음 14장 9-10절 또한 아들과 아버지를 동일시하며 주님 자신이 말씀하셨습니다:“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그러나, 9절에서 그분 자신과 아버지가 동일 하시다고 말씀하신 직후 10절에서 정확한 의미를 설명하사 이것이 이해되게 하셨습니다:“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아들과 아버지의 상호침투의 의미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동일시를 이해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안에서 상호침투와 상호 존재를 삶으로서 너무나 하나이기 때문에 그들의 표현도 동일합니다.

c) 요한복음 10장 28-30, 38절은 아들과 아버지의 동일함의 상징을 보여주는 또한 무리의 성경 구절들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길,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주님의 손과(28절) 아버지의 손(30절)은 동일시 되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내 손..”안에 있는 것은 “...아버지의 손...”안에 있는 것과 동일합니다. 손의 이러한 동일함은 양을 지키기 위한 아들과 아버지의 능력에 관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들의 손”이 “아버지의 손”이고 “아버지의 손”이 “아들의 손”인 것은 30절에서 나타나 하나됨의 동일시 되었습니다:“나와 아버지는 하나니”. 이것은 하나를 보여주는 동일시이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구별을 파괴하거나 무효화하는 동일시가 아닙니다. 요한복음 10장 30절은 “나”와 “아버지”가 동시에 존재하지만 한 분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요한복음 10장 28-30절에서 이루어진 하나됨의 동일시는 요한복음 10장 38절에서 나타나 상호 침투를 구성하는 하나됨이 되었습니다:“...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신대.” 존 알버트 벵글(John Albert Bengel)은 그의 고전작인 신약 단어 연구집에서 요한복음 10장 30절과 38절에 대해 같은 말을 했습니다:“나와 아버지는 하나이고, 아버지는 내 안에 나는 아버지 안에 라는 이 두 문장들은 서로를 상호적으로 설명한다.” 그러므로, 이사야서 9장 6장과 요한복음 14장 9절과 요한복음 10장 28-30절처럼 아들과 아버지를 동일시하는 성경 구절들은 반드시 하나됨의 빛 안에서와 신격의 상호침투 안에서 해석되어야만 합니다.

d) 고린도후서 3장 17절은 주님과 성령을 동일시합니다:“지금 주는 영이시니...” 이 동일시는 반드시 요한복음 16장 13-15절에서 보여주는 신격 안에 있는 상호침투와 함께 이해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영이라는 바울의 말의 의미를 풀어주는 것은 요한복음 16장 14절에서의 예수님의 말씀입니다:“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바울은 주님과 영을 동일시하는데 이는 그들이 한 하나님처럼 서로를 분리할 수 없도록 상호침투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동일시의 말들은 삼일 하나님의 신성한 하나됨을 표현합니다.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영원한 구분을 말소하는 동일시가 아니라 하나됨의 동일시입니다. 그들의 하나됨은 너무나 완전하여 표현 안에서도 나뉘지 않고 동일시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에게 보여진 가장 높은 종류의 하나됨입니다.

3. 서로 바꾸어 쓸 수 있음을 보여주는 성경 구절들

이러한 성경 말씀은 사람의 체험 안에서 삼일 하나님의 한 운행이나 기능을 보여줍니다. 이 한 운행은 “아버지”와 “아버지의 영”과 “주”와 “그리스도”와 “성령”이 믿는이의 체험에 관하여 서로 바꾸어 쓰일 수 있는 단락들에서 볼 수 있습니다.

a) 신격 안에서 세 분 모두가 사람의 체험 안에서 한 분으로서 운행하는 사실은 마태복음 10장 20절과 마가복음 13장 11절과 누가복음 21장 15절을 비교함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각 복음서마다 세 분 중 한 분이 같은 환경 아래서 정확히 같은 것을 하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공회와 회당들 앞에 끌려온 사람들에 대하여 마태복음 10장 20절은 “말씀하시는 이가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라고 합니다. 그후 마가복음 13장 11절은 (누가복음 12장 12절과 비교)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또한 누가복음 21장 15절도 “내가 [그리스도]...구재와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그러므로, 아버지의 성령과 그리스도 자신은 믿는이의 동일한 체험에 관하여 서로 바꾸어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한 분의 운행은 또 다른 분에게 교대로 돌려지는데, 이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신격의 분리할 수 없는 하나됨 안에서 하나로서 운행하기 때문입니다.

b) 요한복음 14장 17-18절 또한 주님과 성령이 제자들에게 오심에 대하여 바꾸어 쓸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그 영이 제자들에게 오실 때 주님 자신 또한 그들에게 오시는데 그것은 17절의 “저”(그 영)가 18절의 “내가”(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 영의 오심은 그리스도의 오심입니다. 제자들의 체험 안에서 서로 교대로 쓰여 한 분의 오심은 또 다른 분의 오심입니다.

모벌리(R.C. Moberly)가 그의 고전인 ‘속죄와 인격’(p.168-169)에서 믿는이들의 체험 안에서 신격의 이 한 기능과 운행에 대하여 언급했듯이 서로 교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성경구절은 사람의 체험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한 분으로서 운행하심을 보여줍니다:

잘 보면 제자들이 일순간에 아들의 임재 대신에 그 영의 임재를 갖고 있던 것이 아니다. 그 영이 있는 것은 아들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들의 임재의 간접적이거나 종속적인 형태의 종류도 아니다. 시간과 공간 안에서의 우리 몸이 존재함에 우리는 “영 안에서의 존재”를 임재의 “실제”를 위한 임시변통의 것이나 대리(그리고 가끔은 아주 서툼)라는 일반적인 말로 대치한다. 매우 상반되게도 이것이 가장 절대적으로 직접적이고 으뜸가고 실제적이 될 수 있는 임재의 유일한 상태이다. 이것 이외의 아들의 임재는, 우리 자신 안에서 그리고 우리 자신으로 우리 자신의 어떠함의 바로 그 실제를 특징짓고 조성하는 영으로서의 아들의 임재 외에는 비교해보면 멀리 떨어져 있고 효과가 없고 실제가 아니다. 결국 이것은 참되고 실제라고 불릴 수 있는 오직 그 임재의 부재나 대리의 형태일 뿐이다.
좋은 신학자가 조심스럽게 구별하고 혼동하지 않듯이 우리 위에는 영적 운행의 세 구별된 영역이 없다. 아버지의 운행의 영역과 아들의 운행의 영역과 성령의 운행의 영역처럼 말이다. 운행은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그리고 두 분이 영안에서 영을 통하여 하는 한 하나님의 운행이다.

삼일 하나님의 하나됨을 보여주는 성경 구절들을 검토한 결과 우리는 그들의 하나됨의 세 방면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내적 존재에서 그분들은 서로 상호침투합니다. 외적 존재에서는 그분들은 동일합니다. 사람의 체험 안에서의 운행에서 그분들은 하나입니다. 이러한 세 종류의 성경 구절들은 삼일(셋-하나) 하나님의 하나됨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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