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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문답자에 대한 답변 (계속됨)

 
 


12월 31일

성경문답자는 “그리스도는 믿는이들 안에서 대리(代理)된다”라고 말합니다.

성경문답자는 계속해서 그리스도가 믿는이들 안에서 성령으로 대리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입장은 사실상 성경문답자에게는 하나님이 세 분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말은 충격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이것을 보증하는 사실들이 있습니다. 아래 내용은 10월 8일과 15일날 라디오 방송에서 녹취한 그의 말 중의 일부입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로 승천한 이후 지금 이 땅에서 삼일성을 대리합니다.
그리스도는 삼일성을 대리하는 성령의 인격 안에서 당신 안에 거하십니다.
그[그리스도]는 성령을 보내어 우리 안에서 삼일성의 대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은... 교회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을 대리합니다.....성령은 삼일성의 대리인으로서 우리 안에서 사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가지 않으면 그가 너희에게 오지 않으며 내가 가서 너희에게 그를 보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성령에 관해 말씀하셨고, 그분은 내가 가면 내가 너희에게 오리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성령이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따라서 성령은 주 예수님과 분리된 인격이다.

성경문답자의 말

10월 8일 프로그램에서 성경문답자는 그의 연구 조수들 두 명과 함께 방송을 했습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대단히 놀랄만한 말을 했는데 성경문답자 역시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 말은 성경문답자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조수는 “세 인격이 우리 안에 거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서로가 되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앞서 인용된 말들과 함께 성경문답자와 그의 조수들이 완전히 혼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마지막 말은 셋-하나님, 그리스도, 성령-이 믿는이들 안에서 내주하는 것을 인정하는 발언입니다. 하지만 성경문답자는 전에 성령이 부재한 다른 둘을 대리하고 그리스도는 믿는이들 안에 거하지 않는다 고 말했었습니다. 누가 이러한 엄청난 혼동을 해명할 수 있습니까? 세 인격이 우리 안에서 거하시고 그들은 서로가 아니라는 말이 분명하고 명백하게 진술되어 있습니다. 나는 성경문답자에게 이것이 삼신론과 어떻게 다른지 묻고 싶습니다. 그의 모든 말과 그의 조수들의 말은 그가 삼신론자임을 나타냅니다. 만약 그가 삼신론자가 아니라면 그가 삼신론자들과 어떻게 구분이 되는지 알고 싶습니다.

위에 간략하게 인용된 부분에서 성경문답자는 대리 하다(represents)라는 말이나 대리(representative)라는 단어를 다섯 번이나 사용했습니다. 이 모든 인용들은 주님이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신 요한복음 14장에 관련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4장은 삼일 하나님의 의미에 대해 밝혀주는 기록이고 주 예수님 자신이 친히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 장을 신중하게 검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문답자가 이것을 어떻게 삼신론의 관점으로 계속해서 번역했는지를 주시하는 것도 중요하게 보입니다.

예수님 말씀

요한복음 14장의 처음 일곱 구절에서 주 예수님은 아버지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시며 제자들이 그분이 무엇에 대해 말씀하시는지 아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2절에서 그분은 아버지의 집을 언급하셨고, 6절에서는 아버지께로 가는 것을 말씀하셨고, 7절에서는 “너희가 나를 알았다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8-11절)

여기서의 말씀은 매우 분명합니다. 빌립이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말했을 때 예수님은 "내가 너희와 삼 년이 넘도록 함께 했었는데 빌립아 너는 아직도 나를 모르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여달라 하느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후에 계속해서 말씀하시길 그분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그분 안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이 그들에게 말씀하신 말조차도 그분이 시작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내가 믿기로 바로 이 순간까지 이 말을 읽는 사람들에게 이 단락은 비밀입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아들과 아버지가 두 분입니까 아니면 한 분입니까? 나는 한 면에서는 한 분이고 다른 면에서는 두 분이라고 말해야만 할 것입니다. 만약 어떻게 이렇게 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모른다고 밖에 대답할 수 없습니다. 나는 오직 한 면에서는 아들과 아버지가 하나라는 것 밖에 모릅니다. 하나를 보았다면 둘을 본 것입니다. 한 분이 당신과 함께 하셨다면 두 분 모두 함께 하신 겁니다. 하지만 다른 한 면에서 그분들은 여전히 두 분입니다. 이것이 삼일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나뉘지 않으나 구별됨

성경문답자처럼 이 구절들을 삼신론 방식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절대적인 구별을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은 두 하나님이 아닙니다. 두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단입니다. 세 분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유일하신 한 하나님입니다. 이 문제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기 위하여 인격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신격 안에 세 인격이 있다고 말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사실상 이것은 좀 지나친 표현입니다. 저명한 신학자인 윌리암 샌대이(William Sanday)는 “삼위일체를 설명할 때 사용되는 단어인 인격(Person)은 존재양식을 의미하는데, 특정 기능의 관점에서 설명할 때 유용한 단어입니다. 그러나 분리된 개인으로 확대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신학의 고전인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의 교리(The Doctrine of the Person of Jesus Christ)를 쓴 맥킨토쉬(Mackintosh)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러한 영역의 용어들은 다소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많습니다. 라틴어로는 페르소나(persona)에 해당하는 헬라어 신학 용어 휘포스타시스(hupostasis)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재에도 결코 인격(personality)이 통상 의미하는 바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전에 논의했던 것처럼 신성한 삼일성의 구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나타내기 위해 “인격(Person)"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단지 언어의 한계로 말미암은 것이지 삼일성을 각기 분리된 의식적인 존재라고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p.524).

아들과 아버지는 하나임

요한복음 14장 10절과 11절에서 주님은 그분이 아버지 안에 계시고, 아버지는 그분 안에 계시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맥킨토쉬 박사는 “그러한 문제에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대부분의 어린아이들과 같이) 종종 호기심을 갖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마치 아는 것처럼 가장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라고 말했습니다. 다음의 사실들은 분명히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 안에 계시고, 아버지는 아들 안에 계시다; 아들이 말할 때 아버지는 일을 하신다; 아버지는 아들의 말씀을 통하여 일하시는데, 이는 두 분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주 예수님이 그분과 아버지가 두분이라고 결코 말하신 적이 없음을 유념하십시오. 마샬의 헬라-영어 신약 행간 성경 에 보면 요한복음 10장 30절은 “나와 아버지, 우리는 하나이다.”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삼일 하나님의 비밀은 우리의 기존의 신학적 지식이 아니라 성경의 분명한 말씀에 따라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아들은 아버지라 불림

이사야서 9장 6절은 아버지와 아들의 비밀에 관한 예언입니다. 이 구절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 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 구절은 우리에게 주신 바 된 아들에 관한 예언이지만 그분은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불렸습니다. 만약 그분이 아들인지 아버지인지 묻는다면 나는 그분은 둘 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분이 아기이면서 전능하신 하나님 둘 다라는 것과도 같습니다. 당신은 아기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습니까? 그러면 당신은 아들이 아버지라 불린다는 것도 믿어야 합니다.

성경문답자와 예수님과의 대화

만약 주 예수님이 오늘날 육신으로 이곳에 계신다면 아마도 성경문답자는 그분께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주님,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주소서.” 예수님은 아마도 “문답자여, 이사야서 9장 6절에서: 그 아기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불리고 아들은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불리우리라를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내가 아들이고 또한 아버지임을 알지 못하느냐? 문답자여, 이천년 전 내 제자 빌립이 물었던 것을 묻고 있구나. 내가 요한복음 14장에서 말한 것을 읽어본 적이 없느냐? 문답자여, 너의 유익을 위하여 19세기 전에 빌립에게 했던 말을 너에게 반복해주겠노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나니. 문답자여, 너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내 안에 아버지가 계심을 믿느냐?” 하나님의 말씀은 아주 분명합니다. 우리 중 아무도 오늘날의 빌립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비록 그러하다 하더라도 주님이 빌립을 분명케 하신 것처럼 우리도 분명케 하실 것입니다.

아들은 영으로 실현되었음

주 예수님이 이 땅 위에 계셨을 때 그분은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아버지를 표현하실 수 있었지만 그들 안에 계실 능력은 없으셨습니다(요14:9a, 17c). 이것이 요한복음 14장 16-18절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 부분에서 아들은 우리에게 그분이 영으로서 제자들 안으로 들어오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그분이 영 안에 들어온다고 하지 않고 영으로서 오시겠다고 한 것을 유념하십시오. 첫째로 그분은 육신으로 오셔서 사람들 사이에서 행하셨고, 그 다음 과정을 통하여 사람들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이것은 그의 존재가 바뀌고 변화되는 것을 필요로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16-18절은 말합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이러한 구절들에 관련하여 성경문답자는 영에 대해 설명하며, 대표하다(represent),나 '대리인(representative)'이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는 이 구절들을 신격 안에 있는 한 인격인 아들이 다른 인격인 아버지께 기도하여 신격의 세 번째 인격인 성령을 보내달라고 했고, 이 세 번째 인격이 오늘날땅 위에서 삼일성의 대표라고 해석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지적했듯이 신격의 구성원을 나타낼 때 “인격”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시되는 실행입니다. 이 문제는 매우 심각한 것으로 아들과 아버지의 사이를 절대적으로 나누는 이단적 실행이라고까지 여겨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가르침이 사실상 삼신론인 것입니다.

부재하신 그리스도

성경문답자가 사실상 믿고 가르치는 것은 그리스도가 오늘날 이 땅 위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가 지금 하늘에 계시고, 땅에 성령을 보내어 그분의 대리인이 되게 하셨다고 믿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대리인이란 단어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만약 내가 어떠한 장소로 대리인을 보낸다면 그것은 내 자신은 그 곳에 가지 않지만 나를 대신할 누군가를 보낸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이것은 내가 부재중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성경문답자의 삼위일체 신학입니다. 정확하게 이런 종류의 이단 신학을 향하여 맥킨토쉬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영의 오심은...부재하시는 그리스도를 대신 한다거나 그리스도에 대한 보충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 자신이... 계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오리니”와 “보혜사가 오면”이란 말은 서로 바꾸어 쓸 수 있으며, 만약 이것을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로 여기는 삼일성 관련 교리가 있다면 그것은 삼신론으로 판결되어 왔다. 경험적 측면에서 영과 그리스도를 구분할 수는 없다. 하나는 다른 하나의 방법이다 (p. 374)

다음의 말보다 더 명쾌하게 설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1. 영의 오심은 부재한 그리스도를 대신함이 아니다.
  2. 영은 그리스도 자신의 임재이다.
  3. 17절에서의 영의 오심은 18절에서의 그리스도의 오심이다.
  4. 경험적 측면에서 영과 그리스도는 구분할 수 없다.
  5. 그리스도가 영으로 변화됨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 안으로 들어오시기 위한 방법이다.
  6. 누구든 이것을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물이라 여기는 사람은 삼신론자로 판결되었다.

영의 오심은 그리스도의 오심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의 교리 라는 책에서 맥킨토쉬 박사는 이 문제를 아주 분명히 했으며 이 부분의 설명은 가히 놀랍습니다:

영의 오심은 보이지 않고 거하시는 임재로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돌아오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신 동안에는 이처럼 더 친밀한 교통이 실현될 수 없었다. 땅 위에서 그분은 사람으로 나타나셨고 물질적인 필요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한 무리와 함께 계시는 동안에는 다른 무리와 함께 계실 수가 없었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니라”가 “볼지어다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리라”로 바뀌는데는 그분의 존재에 광대한 변화가 있어야만 한다. 이러한 전환점이 죽음과 부활이었고 이것은 그분을 새로운 존재 질서의 상태로 옮겨놓았으며 이를 통해 그분의 교회의 내주하는 생명이 되었다. 포레스트 박사(Dr. Forrest)는 “강하며 광대한 이 우주적인 운행하심은 ‘혈과 육’을 입은 제한된 신성에게 속할 수 없었다. 여기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러한 속박들로부터 자유롭게되어야만 했다. 성육신 되신 분이 그분의 영광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외적 요소들이 사라져야만 했다”라고 말했다. 즉 부활 이후에야 비로소 그리스도의 영-영이신 그리스도-은 광범위하고 실제적인 체험으로 퍼져나갈 수 있었다(pp. 375-376).

성경문답자가 그의 잘못된 신학으로 말미암아 부재하시는 그리스도를 전하여야만 한다고 느끼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럽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부재하시지 않음으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이 영의 오심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 그분은 영이 그분을 대리하러 온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영이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말씀하셨고(요14:17),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18절). 이 두 구절을 보면 영이 오시는 것은 주님 자신이 오시는 것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23절에서 주님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는 셋이고 셋은 하나

우리의 하나님은 유일하신 한 분이시고 신성 안에서 우리 하나님은 또한 삼일이십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한 분이 있다면 세 분 모두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 아들이 있다면 또한 아버지도 있습니다. 이것이 요한 일서 2장 23절에서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고 말한 이유입니다. 이것은 영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서 8장 9-11절을 보면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과 “그리스도”가 다 같은 용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영이 있다면 그리스도의 영이 있고, 만약 그리스도의 영이 있다면 그리스도가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들이 있으면 아버지가 있고, 영이 있으면 아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세 하나님들이 아닙니다. 존재와 실제에서 삼일이신 한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날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주의 보좌에서(롬8:34) 살과 뼈가 있는 몸을 갖고 계십니다(눅24:39). 하지만 그분은 또한 생명 주는 영으로서(고전15:45) 우리 안에도 계십니다(고후13:5). 그분은 아들이지만 또한 아버지라 불립니다(사9:6). 그분은 살과 뼈가 있는 몸을 갖고 계시지만 또한 영이십니다(고후3:17). 마태복음 10장 20절은 “말하는 이가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은 우리 안에 거하려 오시는 영이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라고 했지만 에베소서 4장 21절은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그리스도]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 진대”라고 합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 모든 서로 다른 말들을 조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 모든 말들을 조화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은 성경문답자처럼 삼신론의 이단에 빠집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유일한 한 분이시며 또한 삼일이십니다. 그분의 나타나심에서만 삼일이 아니라 그분의 바로 그 존재에서도 삼일이십니다. 그분에 관한 교리 적인 말들은 한 면만 강조하고 다른 한 면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 론

맥킨토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한 그의 책 끝 부분에서 문제 전체를 다음과 같이 적절히 요약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마침내 안식할 수 있는 곳은 하나님의 연합 안에서이며 이것은 흔히 알려져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를 의미한다. 삼일성은 구속의 표현을 위해서 우리가 이해하는 것이지 그것의 내적인 내용분석을 위해서가 아니다. 이것은 결코 산수와 혼합된 존재론의 문제일 수 없다. 지금까지의 하나님의 구원하심에서 나타나는 한 분 하나님을 이해하기 위한 노정에서 우리의 목표는 역사와 그 의미에 기울어졌었다. 이러한 관점까지는 믿음에 변화가 없다. 여기서부터 교리는 결국 그것의 비옥한 근원(根源)을 향하여 방향을 틀어 선회해야만 한다. 이 근원은 바로 우리가 아버지라 부르는 거룩한 사랑으로서의 하나님과, 우리가 아들이라 칭하는 사랑의 희생제물이 되시고 우리의 구속을 위하여 하나의 유한한 영이 되신 동일한 영원한 하나님과, 우리의 마음을 새로운 생명으로 채우고 그분의 아들을 계시하는 우리가 영이라 부르는 하나님이다. 이러한 고백으로 우리의 구주이신 영원한 하나님을 아는데 있어 우리에게 주어진 최선의 것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 기사는 다섯 기사 시리즈 중 두 번째 기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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